• 2020. 12. 20.

    by. HappyDi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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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교에 대한 생각들을 참 많이 하게 된다.

    안타깝지만 나를 움직이는 동력 중 하나가 비교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자주했던 말이 "비교하지 말자", "가지지 못한 것 보다 가진 것에 집중하자"는 말을 자주 했던걸 보면 비교심리로 인해 불안한 감정을 종종 느끼곤 했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나 싶다.

    20대 후반을 지나고 있는 지금은 나에게 좋은 것을 해주기보다 성과를 위해 나를 소진하고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것도 꼬아 생각하고 지금 아니면 다시는 나에게 기회가 찾아올 것 같이 않아서 하루하루를 낭비할 수 없다는 강박까지. 나보다 멋진 사람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비교 심리. 결국 나는 '교만'하기보다 '비참'하기를 선택하며 남들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캘리브레이션을 맞춘다'

    인지심리학 김경일 교수님은 우리의 인생이 캘리브레이션을 맞추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매일매일 고민하고 번뇌하고 그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비로소 자기 색깔로 나온다고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발견하고 끊임없이 고민해가는 과정. 그 과정에서 왔다갔다 하는게 당연한 것이라고. 한 번에 성숙한 자아가 나올 수 없음을 인지하고 배웠던 시간.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를 자신에 맞게 조정해가고 있구나.

    열정이 불타올랐다 사그라들다를 반복하면서 느낀 나의 감정을 대변해 주는 문장을 만났다.

    "나는 처음으로 그동안 외면했던 자신에 대한 진실을 마주했다. 그렇다, 나는 그 무엇도 꾸준히 하지 못한다.'

    하고 싶은게 많은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무엇하나 꾸준히 하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둔다는 사실이 자신을 괴롭혔다. "난 왜 항상 이럴까~~~". 나를 괴롭히는 이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냥 일단 뭐든지 꾸준히 해보는 연습을 하기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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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같이 작지만 하나씩 그림을 그린다.

    2달이 되었다.

    " HOW TO DRAW ALMOST EVERYDAY"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자고 말만 하기보다 실천하기로, 무언가를 한 번 꾸준히 해보기로 마음 먹으면서 일부러 일거리 하나를 만들었다. 하루에 짧으면 5분 길면 10분, 지금도 사실 그림을 그리며 이걸 왜 해야하지라는 생각이 사로잡힐 했때가 많다. 첫 한달은 그럭저럭 열심히 했는데 두 달째 되니까 말 그대로 현자타임이 온 것이다.

    생각도 습관이구나

    내가 하는 모든 일들에서 항상 그 일을 하고 난 뒤의 결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그러니 딱히 이 그림그리기를 내가 1년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를 자꾸 생각하다가 하기가 싫으니 생각이 다시 방어기제를 발동시키고 있었던 것.

    나의 행동을 제약하는 행위에 있어서 나는 항상 생각을 했다. 이 일을 왜 하지, 내가 이 일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결과가 무엇이지. 운동을 하고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어디를 가던지 말이다. 과정보다 결과에 집중한 삶은 항상 의미를 찾게 만들었다. 그리고 끝내 그 의미를 찾지 못하면 그만두었다는 소리다.

     

    옷가게보다 서점 들리기를 좋아하고 화장품보다 문구류 사기를 좋아하는 스스로를 인정하기로 했다.

    예쁘게 입고 싶은 욕구, 옷을 사고 싶은 욕구, 예쁜 화장품을 사고 싶은 욕구가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외적인 요소를 꾸미고 치장했을 때 타인으로 부터 오는 인정과 칭찬이 좋았던 것이지.

    이걸 알면서도 그 끈을 놓기가 굉장히 오랜시간이 걸렸다. 앞으로 나이를 더 먹고 더 이상 젊은 나이가 아닐 때, 그 때도 외모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할까 생각했을 때 나는 아니었다. 그냥 얼굴이 어떻게 생겼든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한 취미 부자 할머니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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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외면하는 나

    주변 사람들이 나에 대한 피드백을 줄 때 사실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정하기가 어려운 까닭은 나에게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어느정도는 예상하고 체감하고 있지만 자신에게는 불편한 진실이라 애써 의식밖으로 밀어내는게 아닌가 싶었다.

    팀장님의 나에 대한 평가는 새로운 걸 만나면 굉장히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냥 겁먹지 말고 해보면 아무 일도 아닌데 항상 겁부터 먹고 네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접근한다는 것이다. 분명 모르는 내용은 아니었다. 사실 알고 있는데 그러려면 내가 이 두려운 감정을 스스로 이겨내고 변화해야 하는데 애써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감정을 맨 앞으로 끌고 나와 "그건 다 팀장한테 여태껏 별거 아닌 것 같은 일로 호되게 혼나서야. 그래서 더 이상 액티브하게 무언가를 하기가 두렵단 말야" 라고 방어기제가 발동해버리는 탓이다.

    고슴도치는 고슴도치와 살아야 한다.

    무의식에서 흘러나와 타인에게 꽂아내린 말, "그냥 안맞는 거에요. 서로 안되는 관계 붙잡고 있어봤자 그냥 이렇게 매번 힘들기만 하잖아요" 나는 놓아버리려고 했고, 상대는 붙잡으려 했고. 일정한 거리가 필요한데,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감정에 휩쓸려 그냥 그 관계를 포기해버리려고 했다. 더 이상 부딪히지 않는걸로. 그런데 사실 어딜가도 똑같지 않을까 싶다. 서로의 가시에 피를 철철흘려도 결국 고슴도치는 고슴도치와 지내게 되니까. 다만 서로의 가시에 찔리지 않는 방법들을 배워가고 있구나.

    싱가폴 달팽이

    다큐 영화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촬영한다. 꾸며낸 것들이 아닌 현실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매력이 있다. 그러나 영화라는 영역에는 결국 '편집'이라는 개입이 들어갈 수 밖에 없고, 어떻게 자르고 이어붙이고 프레임 속으로 담아내고 빼내느냐에 따라 상황을 극적으로도 만들 수 있으며 내가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다큐 영화의 예술성 측면에서 자주 비판받고 거론되는 것이 바로 그거였다. 이어붙이고 편집하는 과정에 있어서 현실을 담담하게 드러내기 보다는 너무 아름답게, 감독이 원하는 그림을 만든게 아니냐고.

    새벽 아침에 산책을 하다가 큰 달팽이와 작은 달팽이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사진을 인스타에 올렸더니 어떤 이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I'm not a fan of snails but this is cute!!

    사실은 내가 이 사진을 찍을 때 원하는 구도가 안나와서 새끼 달팽이의 자리를 살짝 옮겨서 찍었다. 결국 현실성 없는 사진인데, 편집을 함으로써 팔로우 6명 댓글하나 안달리는 그 인스타 계정에 그런 댓글이 달렸나 싶었다.

    SNS를 줄여야하는 이유는 우리는 타인이 우리에게 내보이고 싶은 편집된 그들의 아름다운 일상만 보고 그것이 그 사람의 일상의 전부인 것 마냥 받아들이고 자신의 상황과 쉽게 비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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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잘 모르는 영역이라면 더 비교하기가 쉽다. 눈에 결과물만 보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것을 성취하기까지 노력했던 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혹 같은 사진 작가라면 멋진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수십장 수백장을 찍고 기다리고 찍어야 하는 노력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리 낭만적이지 못할 것이고.

    기록을 의미있게 가공하는 블로거들의 일상과 기록이 보기 좋아서 부러워했었다. 항상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좋은데 다니고 일상들을 기록해서 모아놓고 그렇게 포스팅들을 훑어보면 어느샌가 그들의 일상이 부럽고 좋아보였다. 그런데 막상 블로그 포스팅을 시작해보니 어느 곳에나 편집이란게 들어가는 구나라는 사실을 알게되니 공허한 마음이 조금은 위로가 됐다.

    나름의 고뇌와 귀찮음을 이겨내고 일상을 담아내는 노력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인생은 편집본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타인의 삶을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는 교훈을 주었다.

    내가 가공하는 이 포스팅이 내 삶의 전부를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본 타인의 일부의 일상이 그 사람의 삶의 전부는 아니구나. 누군가는 이 포스팅들이 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겠지. 타인이 나를 보는 관점과 평가도나의 일부만을 보고 그런 것일텐데 그만큼 주관적이고 부정확한게 또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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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스타 감성 사진을 찍기 위해서 매번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 누군가의 꾸며진 일상 뒤에는 남에게 보여지기 위해 설정하는, 말그대로 현실성을 살짝 누르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일상의 편집이 존재한다는 것.

    우리의 삶이 한편의 영화라고 생각을 했다. 정말 수많은 촬영물을 찍어내고 안되면 또 다시 찍고 그렇게 쌓인 결과물들 속에서 중요했던 장면들을 자르고 이어붙여 나라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고. 그 안에는 수많은 버리는 장면이 있을 수도 있고, 감독이 생각하는 중요한 장면들과 쓸데없는 장면들이 존재할테고. 나의 삶이 감독이 나라면, 나의 영화에 어떤 부분을 버리고 넣을 수 있을까.

    짐작컨데, 내가 아주 힘들다고 느꼈던 시절이 분명 영화의 전반부를 장식할 것 같다. 기승전결. 어찌되었든 나의 밝고 행복한 현재의 삶을 더 빛나게 만들어주는 건 극적인 과거의 일들일테니까. 지금 힘들다고 해서 너무 그 힘듦 속에 빠져살지 말자는 소리다. 결국은 그런 때가 있었기 때문에 훗날 그 과거마저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때가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은 바로 이런 영역일 것이다. A는 A다라는 명제 외에도 순간의 맥락을 살피고 그 상황 속에서 A는 O이다라는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맥락적 사고, 기계가 따라올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 사물과 사물을 연결하고 상황과 상황을 대조해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능력.

    A를 말하고 싶은데, B를 말함으로써 A에 대한 대답을 대신하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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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감이 없는 나라에서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 스타벅스 MD 구경하기

     

    스벅 신상이 선반을 가득 매웠다. 항상 스타벅스에 오면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서 좋다. 프랜차이즈의 좋은 점은 익숙함을 통해 오는 편안함이다. 그 편안함에 새로움을 더하는 건 바로 이런 계절성 상품이겠지.

    읽고 싶은 책. 저장저장

    의식의 흐름대로 써내려갔다. 딱 15분만 일상기록으로 쓰자고 해놓고 1시간 30분을 쓸데없는 사색으로 채워넣어버렸다. 가끔 보면 포스팅할 소재와 콘텐츠들은 많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게 나만의 방식인가 싶기도 하고. 영화도 보면 감독들마다 연출에 대한 개성이 있는데, 글을 쓰는 걸 보아도 남들이 읽기 좋은 그런 글을 쓰는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로만 잔뜩 때려넣는게 상업성 부족한 B급 영화 같다는 생각도 들고.

    대학 때 문화 산업을 배우길 잘했다. 문과에 오길 잘했다. 적어도 그게 나랑 정말 잘맞는 길이기도 했구나. 비록 '돈'을 버는 공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공부를 했구나.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고, 특정 영역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고 비판하고 했던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다. 여전히 글쓰는 능력도 스킬도 문법도 심지어 맞춤법도 부족하지 않은 곳이 없지만 그래도 계속 써내려가다보면 달라지겠지 더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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